[인터뷰]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美와 디스플레이 동맹 필요…VR은 기회”
“OLED 수율 관리 어려워…한중 격차 존재”
“디스플레이 산업은 국가 안보와 직결…한미 동맹 필요”
“2024년 애플 VR 기기 출시 전망…한국 디스플레이에 기회”
“반도체 인력난의 후폭풍이 디스플레이 업계를 타격했다.”
지난달 코엑스에서 열린 ‘2022년 상반기 OLED 결산 세미나’. 당시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는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이 처한 현실을 이처럼 표현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가 하나같이 ‘반도체 코리아’를 목놓아 외칠 때였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양성을 주문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회에서 반도체 특강을 열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반도체를 향할 때 이 대표는 돌연 ‘디스플레이 위기론’을 주창했다. 그는 반도체 인재난으로 ‘디스플레이’ 업계의 인력 유출이 가속화됐고, 가성비로 무장한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선점한 중국에게 디스플레이 시장을 통째로 내어주면 전세계 정보통신(IT) 및 가전 제품이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갈 거란 섬뜩한 경고도 덧붙였다.
디스플레이 업계에 경종을 울린 그의 지적은 EBN과의 인터뷰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한미 양국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디스플레이’ 동맹을 맺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가상현실(VR)’은 정체기를 맞은 디스플레이 산업에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손꼽히는 디스플레이 전문가이자 ‘K-디스플레이 전도사’로 불리는 이충훈 대표에게서 ‘K-디스플레이’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봤다.
“OLED 시장은 다를 겁니다.”
그에게 첫 질문으로 ‘한국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산업’의 안부를 물었는데 돌아온 답변에 조금은 안심이 됐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중국이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손쉽게 장악했듯 OLED 시장도 점령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직 양국 간 기술력 격차가 존재한다고 봤다. 무엇보다 중국이 과거 LCD 시장에서 거둔 승리를 OLED 무대에서 재현할 요소가 부족하다고 했다.
“(중국에게) OLED 시장은 쉽지 않을 겁니다. 중국이 과거 LCD 시장에서 급성장한 데는 한국의 하이디스(SK하이닉스 반도체 LCD 사업부)와 일본의 NEC LCD 테크놀로지스 같은 기업들이 통째로 넘어갔기 때문이었죠. 기술자와 공장의 장비까지 모두 중국에게 넘어갔으니 초기부터 양산 기술을 확보하기가 수월했던 겁니다. 반면 아직까지 OLED 시장에서 중국 업체들에게 주요 공장과 기술, 인력이 통째로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OLED 시장에서는 불량품은 줄이고 양품을 늘릴수 있도록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이 대표는 바로 여기서 양국의 격차가 존재한다고 봤다. 때마침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의 퀀텀닷(QD)-OLED의 수율이 85%를 달성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QD-OLED는 삼성전자 65인치 TV 모델 등에 탑재되는 8.5세대 차세대 디스플레이다. 반면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가 생산하는 화이트유기발광다이오드(WOLED) 패널은 최근 공정 테스트에서 원래 계획의 50% 수준만 통과하는 등 낮은 수율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OLED는 반도체처럼 연속 공정 과정을 거쳐야 해서 수율 관리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데 지금 중국은 OLED 수율을 잘 못 냅니다. 아직까지 우리와 격차가 있어요. 또 IT 제품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OLED 기술 난이도 역시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술 흐름을 보면 과거 박막트랜지스터(TFT)는 저온다결정실리콘(LTPS),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방식으로 바뀌고 있고 최근에는 여기에 폴더블까지 더해졌죠.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중국 업체보다 압도적인 OLED 기술력을 지녔다고 봅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중국 업체들에 비해 높은 기술력을 가졌습니다.”
이 대표는 양국의 OLED 기술 격차가 ‘적어도 4-5년’은 될 것으로 진단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고 봤다. 바로 중국 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다. 대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기술경쟁력이 높아지고 제품 가격도 덩달아 오른다. 다만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높은 기술력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 결국 합당한 선에서 보다 저렴한 제품을 찾게 된다. 중국의 가성비 전략에 맞서 프리미엄 전략 카드를 꺼내든 국내 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OLED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양산 기술인데 여기서 4-5년 정도는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들(중국)의 시장 교란 전략입니다. 중국 업체들은 OLED 품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싼 값으로 계속 생산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늘려갈 겁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OLED 시장은 우리나라와 중국이 대부분을 점유하게 될텐데 자칫 한국의 리지드 OLED가 중국의 플렉스(Flex) OLED에 잡아 먹히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리지드 OLED 패널은 스마트워치와 중저가형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핵심 기판으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중국의 가격경쟁력이 강점을 발휘하는 대표 무대로 스마트폰 시장을 꼽았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최근 OLED 패널을 탑재한 스마트폰 출시를 서서히 늘려가고 있다. 주요 OLED 스마트폰 업체들이 올 1분기 출시한 모델 수는 총 50종으로 이 가운데 중국 업체 모델이 43개(86%)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출시된 한국산 OLED 스마트폰(5종) 대비 약 9배에 달하는 규모다.
물론 중국 스마트폰이 LCD를 벗고 OLED 패널을 입는 것이 우리에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이미 LCD 시장을 중국에 내어준 뒤 OLED 사업의 전환 속도를 빠르게 올려가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해 6월부터 LCD 사업에서 철수하고 올레드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LCD 사업 규모를 순차적으로 축소하고 올 하반기 대형 LCD 생산량을 최대 20% 낮추기로 결정했다.
“중국산 OLED 스마트폰이 늘어난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OLED 산업에 좋은 시그널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LCD 수요가 OLED로 대체될 테니까요. 예를들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도 최고급 기종에는 삼성디스플레이 같은 국내 업체들의 OLED 패널을 사용하게 되겠죠. 따라서 중국산 OLED 스마트폰이 늘어나면 현재 OLED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제조업체들에게도 당장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한미 디스플레이 동맹 필요…국가안보와 직결”
이 대표는 중국에게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도권을 뺏긴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라고 했다. 이는 단순히 주요 산업을 잃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얼마전 세미나에서도 “반도체가 한국의 전략 산업이라면 디스플레이는 중국의 전략사업”이라며 “만약 디스플레이 산업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전 세계 IT, 가전제품은 중국 정부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토록 강경한 그의 주장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을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봤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무엇보다 국가 안보와 직결될 수 있어요. 만약 중국에게 디스플레이 산업을 모두 빼앗기면 세계적으로 각국이 방산에 해당하는 부분인 군수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왜냐하면 군수 부문에서 각종 디스플레이가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만약 중국에 디스플레이 산업이 넘어가 버리면 훗날 각국이 정말 중국산 디스플레이를 써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대표는 한미 양국이 반도체 동맹을 외치듯 ‘디스플레이 동맹’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은 한국과 함께 ‘반도체’를 공통분모로 삼아 중국 견제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이 구상 중인 반도체 공급망 동맹인 이른바 ‘칩4 동맹(한미일·대만)’ 참여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연일 들려온다.
“한미 반도체 동맹 이야기가 계속 나오듯이 저는 디스플레이 동맹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봐요. 미국에서 반도체를 아무리 통제하더라도 중국에게 디스플레이를 통제당하면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VR은 새로운 기회…K-디스플레이 수혜 전망”
이 대표는 ‘K-디스플레이’ 산업의 새로운 기회로 다름 아닌 ‘VR’을 꼽았다. VR이 앞으로 TV와 모니터를 대체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VR시장은 2016년 대두된 이후 활용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게임, 교육, 영화, 헬스, 예술, 스포츠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업계에서는 현재 애플이 오는 2024년 출시를 목표로 VR과 AR을 아우르는 2세대 확장현실(XR) 기기 개발에 나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 역시 지난 2017년 ‘AR과 VR의 성장에 따른 OLED의 발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가상현실을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는 고화질 콘텐츠는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마련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며 “AR과 VR을 위한 디스플레이 패널을 언급할 때 OLED 디스플레이를 빼놓을 수 없다”고 전망했다.
“2024년은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에도 중요한 해가 될 거라 봅니다. 디스플레이는 부품이기 때문에 반드시 세트 수요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애플이 2024년부터 VR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이 커진다면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에게도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겁니다.”
EBN 이남석 기자, 『[인터뷰] 이충훈 유비리서치 대표 “美와 디스플레이 동맹 필요…VR은 기회”』, <EBN> , 2022.07.25